박서생과 청년통신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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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정호운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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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생과 청년통신사선

박서생과 청년통신사선

박서생의 본관은 비안(比安)이며, 자는 여상(汝祥). 호는 율정(栗亭)이다.
할아버지는 박윤보(朴允甫)이고,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박점(朴漸)이다.
박서생은 1428년(세종 10)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때 수차(水車)의 이점과 그 도입을 건의해 농사기술의 혁신을 가져왔다.
아울러 그가 보고한 일본의 정세와 왜적의 동태는 이후 조선이 일본에 대한 정책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의성은 청년통신사선이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박서생의 최고 업적은 일본을 드나들면서 수차에 의한 농사기술의 혁명이었다.
이후 박서생은 의성의 김주수(공교롭게도 의성군수와 동명이인)와 협의하여 수익인학(水益人學 : 물로 인간을 유익하게하는 학문)을 착안하고 율정학교를 설립하였다.
율정학교는 물과 관련되 몇가지를 중심으로 청년들을 육성하여 나라에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했다.
첫 번째 물을 다루는 기술, 두 번째 좋은 물을 가공해 식수를 만드는 기술, 세 번째 물을 활용해 백성들에게 기쁨을 주는 방안, 네 번째가 물을 연구하여 자연과 농업을 이롭게 하는 연구이다.
다섯 번째는 조선통신사선을 제조하고 의전하는 관례를 가르쳤다.
조선통신사선은 율정학교의 이름에서 율정을 가져와 율정선이라 이름을 지었다.

일본 내 ‘한류의 원조’라면 흔히 조선통신사가 거론된다.
그들은 막부에 대한 동향 탐지, 일본인 개화 등을 이유로 조선통신사는 1607~1811년 200여 년간 모두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됐다.

박서생의 업적